착한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를 연출했던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작품입니다. 로맨틱 코미디이긴 하지만, 앤 해서웨이와 로버트 드 니로의 로맨스는 아닙니다. 그런 기운을 풍기는 장면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영화 초반부터 서로 다른 짝과 맺어지는 구도가 확실하게 나오기 때문에, 젊은 여자와 노년의 로맨스를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편안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은퇴 후에 새 직장 생활에 대한 주제는,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아주 친숙한 주제이기 때문에 더더욱 공감을 하며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벤이라는 캐릭터는, 노후 생활도 안정되어 있고 요가나 중국어 등 각종 취미 생활을 즐기며 세계 여행도 다녀오는 등 인턴 생활도 마치 취미의 연장선처럼 보일 여지가 있기에 그 부분에 대한 표현이 조금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벤의 인턴 생활 역시도 온라인 마켓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관록을 이용해 시의적절한 조언을 계속해 주며, 동료들과 사이도 원만하고, 직장 내 마사지사와 연애까지 하게 되는 완벽한 노년 커리어를 보여주기에 어떤 판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세대갈등 역시도 이 영화의 주요한 주제인데, 정말 세대 차이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서로 간의 차이를 인식하고 인정하게 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나이 어린 사람을 존중하고, 느긋하고 유연한 기성세대와 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가, 그를 존경하게 되는 신세대의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이 역시 조금은 입체적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추천하는 것은 말 그대로 착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암묵적으로 원하는 자신의 노년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이랄까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도전
과거에 전화번호부를 출판하는 회사인 덱스원의 부사장으로 재직하다가 정년퇴직하고, 아내와 사별하게 된 70세의 노인 벤 휘태커는 본인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중국어나 요가를 배운다거나, 세계 여행까지 다녀왔지만 공허함을 느꼈고, 가끔 자녀들의 집에 방문해도 본인의 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사회에서의 본인의 필요성을 느끼고 싶어 했고, 자존감을 되찾기 위해 뉴욕시에 위치한 온라인 의류 마켓의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됩니다. 벤의 겸손하고 매너 있는 태도에 면접은 바로 합격하게 되었고, 그는 사장인 줄스 오스틴의 개인 인턴으로 배정되게 됩니다. 일이 너무나 바빠 시니어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던 것조차 까먹고 있었던 줄스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벤은 인터넷으로 업무를 해본 적이 없기에,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벤은 금방 업무에 적응하여 본인의 연륜에서 묻어나는 각종 노하우를 조언해 주며 회사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갖게 되고, 뛰어난 처세술로 회사의 모두가 사랑하며 존경하는 인기인이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줄스가 볼 때마다 눈을 질끈 감으며 한숨 쉬는, 언젠가부터 각종 잡동사니가 쌓여 이제는 암묵적으로 잡동사니를 쌓는 공간이 돼버린 탁자가 있었는데 그곳 역시 깔끔하게 정리하며 줄스의 호감을 사게 됩니다.
운전 기사
벤의 활약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연하게 벤의 운전기사가 대기하면서 술을 마신 장면을 목격하게 된 벤은 바로 운전기사에게 달려갔고 본인이 알아서 그만둘 건지, 문제를 일으켜서 해고당할 건지를 선택하게 만들어 바쁜 줄스를 배려하면서도 상황을 정리하게 됩니다. 벤의 처세술이 가장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그렇게 해서 줄스의 운전기사까지 하게 된 벤은 줄스의 바쁜 일정을 본인만의 지름길로 깔끔하게 소화해 내면서도 업무에 바빠 주변을 챙기지 못하는 줄스를 따듯하게 배려함으로써, 줄스의 마음에 들게 됩니다. 성미가 급한 줄스는 본인을 꿰뚫는 것 같은 벤에게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껴 벤을 교체해달라고 섣부른 행동을 하게 되어 벤이 교체 당하는 해프닝이 생기지만, 진심으로 사과하고 다시 돌아와 달라고 말하며 베스트 프렌드가 됩니다. 벤은 운전기사를 하며, 줄스의 사생활에 점점 가까워지는데, 줄스는 CEO를 하면서 전업주부를 하고 있는 남편과 딸에게 좀 소홀해졌고 더불어 외부 CEO 고용을 원하는 투자자들의 요구에 맞춰 규모가 커진 회사를 위해 CEO를 스카웃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벤은 이 과정에서 줄스의 딸과 놀아주는 심부름을 하다가 줄스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엄마들의 대화를 통해 워킹맘에 대한 편견과 그것을 견디고 있는 줄스의 상황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줄스에게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샌프란시스코로 CEO 후보와 미팅을 하게 되는 자리에 동행하게 됩니다.
태극권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호텔에 묵게 되는데, 호텔에서 잠시 줄스의 방에 같이 머물게 되면서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줄스는 사실 남편의 외도를 알고 있었고, 어떻게든 되돌리기 위해 외부 CEO 영입을 강하게 맘먹게 되었다고 밝힙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우는 줄스를 벤은 따듯하게 위로해 줍니다. 이혼하면 죽어서도 공동묘지의 독신자 묘지에 공동 매장될 거 아니냐며 서럽게 우는 줄스에게 벤은 본인의 묘에 같이 들어가며 된다며 따듯한 위로를 해줍니다. 다음 날 미팅 직후에 그를 고용하기로 했다며, 줄스는 벤과 남편에게 얘기합니다. 하지만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달려온 남편이 외도 사실을 고백하며, 사실은 전업주부가 된 자신의 낮아진 자존감으로 인해 한 실수라고 얘기합니다. 본인은 아직도 줄스를 사랑하며, 자신의 실수 때문에 줄스가 자신의 손으로 일군 회사를 포기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며, 진심 어린 사과를 합니다. 결국 줄스는 외부 CEO 영입을 철회하며, 이 기쁜 소식을 벤에게 전하기 위해 찾습니다. 하지만 벤은 자리에 없었고, 줄스는 벤을 찾아서 어떤 공원으로 가게 됩니다. 벤은 휴가를 쓰고 공원에서 태극권을 수련하고 있었고, 굿 뉴스를 전해주겠다는 줄스에게 태극권 끝나고 얘기하자고 말합니다. 둘은 함께 태극권을 수련하면서 영화는 끝이 나게 됩니다.
편한 영화
영화 인턴은 한마디로 보기 좋은 편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위기 상황이 있거나, 뛰어난 서사가 있는 플롯은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면서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꼭 어떤 거대한 흑막이 있고 그에 맞는 사건과 갈등이 있어야 잘 만든 영화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일상에서의 이상향적인 영화 역시 취향에 맞는 편입니다. 이 영화는 막상 미국에서는 평이 안 좋았고 한국에서 크게 흥행을 했는데, 우리나라의 정서와 저의 정서에 크게 맞아떨어진 점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로버트 드 니로의 젠틀맨 연기에 크게 감화가 되었는데 제가 나중에 늙어서 비치고 싶은 모습 그 자체를 연출했기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나이가 많음에도 상대를 존중하는 젠틀함과, 예의 그리고 겸손함을 보여주며 상대의 호감을 사고, 갈등 없이 잘 어울리면서 어떤 상황에도 관록 있게 동요하지 않고 느긋하며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이런 캐릭터는 일상에서나 회사에서 정말 보기 힘든 캐릭터이기 때문에 이 영화는 판타지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잔잔하지만 흥미롭게 볼 수 있었던 영화이기에 꼭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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