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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When the Day Comes) 결말 포함

by 재테크 도감 2024. 12. 21.

 

출연진 및 영화 소개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의 역사 드라마 영화입니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시대극입니다. 이 영화는 정말 많은 이름 있는 배우들이 역할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제작에 많은 참여를 보여줬습니다. 너무나 많은 배우들이 참여해 일일히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대표적으로 주연진으로만 김윤석,하정우,유해진,김태리,박희순,이희준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참여했습니다. 이외에 조연으로도 너무나 문성근,우현,유승목,현봉식,박지환,오달수,고창석,여진구,김종수,조우진,김의성,설경구,강동원 등 한 영화에서 이 정도의 이름 있는 배우들을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마 1987이 유일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만큼 배우들 역시, 이 의미 있는 영화 제작에 열과 성을 다했음을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는 실존 인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배우들이 그 당시 발언을 잘 살리는가에도 관심이 쏠렸습니다. 예를 들면,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어?"와 같은 대사가 있는데, 김윤석 배우가 너무나 훌륭하게 잘 살려냈습니다. 우리 가슴 아픈 역사를 너무 신파에 매몰되지않고, 빠르고 긴장감 있는 전개로 만든 훌륭한 영화입니다. 또한 배역을 고루 잘 살려냄으로써,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각계각층에서 어떤 고초를 겪고 노력을 해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영화 줄거리

1987년 1월에, 서울대 재학생 박종철이, 경찰 조사받던 중에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경찰은 곧바로 증거 인멸을 하기 위해, 최환 검사에게 시신 화장을 요청하나, 최환 검사는 이를 수락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윗선을 통한 압박이 들어오자, 최환 검사는 전화기 부수고 시신 보존 명령을 내린 뒤, 동료 검사를 통해 언론에 정보를 흘리게 됩니다. 이를 기사로 낸 중앙일보는 군인들에 의해 쑥대밭이 됩니다. 치안본부는 사태 수습을 위해 기자회견을 하다가, 사망 확인을 한 중앙대병원 의사 정보를 발설하게 되고, 기자들은 여기로 몰려가나 큰 수확은 얻지 못합니다. 유일하게 윤상삼 기자가 수포음이 들렸단 증언을 확보합니다. 최환 검사는 직위를 잃고, 짐을 챙기는 척하며, 윤상삼 기자에게 은밀하게 부검 결과서를 넘깁니다.

치안본부는 꼬리 자르기를 통해, 관련자들 몇 명을 감옥으로 보내게 됩니다. 한병용 교도관과, 재소 중이던 이부영을 통해 이들의 면회 기록이 세상에 나감으로써, 물고문으로 인한 고문치사 사건임이 세상에 퍼져 나가게 됩니다. 이는 이한열 열사가 시위 도중 최루탄을 맞고 사망하게 되는 사건과 함께 6월 민주 항쟁의 기폭제가 되게 됩니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실존 인물이 아닌 평범한 여대생을 연기한 김태리가, 밖으로 뛰쳐나가 호헌철폐와 독재 타도를 외치게 되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영화 평가

출연 역할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곳곳에 적절하게 잘 집어넣고, 실제 사건을 여러 명의 다양한 시각으로 잘 구성해냄으로써, 그날의 사건을 생생하게 일깨워 준 영화입니다. 또한 영화의 중심이 되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외에도, 시위와 민주 항쟁에 회의적이던 일반 여대생 연희가, 박종철 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변화하는 전개를 보여준 것 역시 너무나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강동원이 연기한 이한열 열사를 자연스럽게 등장시키는데도 한몫했지만, 우리가 이 사건이 전개되는 것을 보는 데 있어서 굵직한 역할을 많지는 않았지만, 희생되었던 수많은 일반 군중들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사실, 군부 독재를 겪어보지 않은 세대로서, 연희라는 캐릭터가 영화에 몰입을 더 쉽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시대극이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얻어내게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는, 검사와 교도관, 기자와 의사, 부검의 등 수많은 일반 사람들의 양심과 희생으로 얻어 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나 하나쯤 눈 감아도 되겠지라는 생각을 단 한 명이라도 했다면, 이 사건은 은폐되고 군사정권의 뜻대로 되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모두가 뜨거웠던 그 해 1987년은 지금의 우리 세대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